|
나에게는 영화를 보기 전에 제목이나 포스터, 예고편을 보고 그 영화의 흥망을 점쳐 보는 습관이 있다. 그리고 내 딴에는 좋은 느낌의 영화만을 극장에서 보는 편이다. 대개 흥망은 둘째치다라도, 보고 싶은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의 구별은 분명한 편인데, 『미녀는 괴로워』는 갈팡질팡했다.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 "못생기고 뚱뚱한 여주인공이 전신 성형을 해서, 성공한다는 얘기는 역시 거북살스러워."하고 괜히 핀잔을 주었다. 그런데 예고편을 보고 나서 "꼭 그렇지만은 않아.", 살짝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몇 십만의 부진한 흥행 성적으로 끝나기에는 OST(Maria)가 아깝다. 그걸 부른 김아중의 목소리가 아깝다. 예고편에 깔린 느낌도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다. 딱히 보고 싶은 다른 영화도 없다. "그럼 일단 보자!"
초반 20분 정도를 놓치고 한나가 전신 성형을 결심하고 병원에 찾아가서 의사를 설득하는 장면부터 봤다. 끝까지 재미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가 계속 나를 거슬렀다. 『달콤, 살벌한 연인』을 봤을 때 느꼈던 착잡한 기분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기분 나쁘면서도 오싹한 느낌이 엄습했다. 400만 명을 넘어서고 있는 이 영화의 흥행이 조금은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소매를 걷어 올리고, "이딴 영화에 이래도 돼?"하는 식으로 어처구니없이 이 영화를 깔아뭉갤 생각은 아예 없다. 다만 분명히 밝히고 싶다. "정말 괜찮은 거야?" ![]() 단지 여주인공이 전신 성형을 해서가 아니다. 외려 그가 무엇을 위해서 전신 성형을 선택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20분을 놓쳤다고 해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못생기고 뚱뚱한 한나가 무대 뒤에서 그 자신보다 예쁘고 날씬한 가수의 입모양에 맞춰 노래 부를 때, 그리고 외모 때문에 좋아하는 프로듀서에게 마음껏 다가가지 못하고 망설일 때, 그가 느꼈을 절망과 슬픔을 말이다. 전신 성형을 하겠다고 마음 먹은 건, 무대 위에서 목소리를 잃은 바비 인형의 앵무새 노릇을 그만 두고 온전히 한나로서 무대에 서고 싶다는 꿈 때문일 수 있겠고, 사랑하는 사람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작 한나는 아름다워지고도 전신 성형을 한 자신을 당당히 밝힐 수 없었다. 예뻐지고 날씬해진 대신에 이름을 잃고 제 목소리를 잃고 가족을 잃고 해외에서 온 제니로 둔갑한 것이다. 전래 동화에서 우렁각시가 매일 매일을 성실하게 살아 가는 어느 청년의 밥을 지어주기 위해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했던 것처럼, 어려움에 몰린 프로듀서를 돕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계약 위반을 걱정하면서도 사랑하니까 당연하다는 듯이. 그러고서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에 진실을 말하려고 했을 때, "성형해도 상관 없어. 내 여자만 안 그러면 돼지, 뭐."라는 남자의 말이 한나의 입을 막아 선다. 프로듀서로서, 무대 위에선 바비 인형의 입모양과 움직임을 조종하고 무대 뒤에선 착한 앵무새에게 사랑이라는 먹이를 주며 인형의 입모양에 따라서 노래 부르게 하는 연예계의 시스템을 묵인하고 제일선에서 따라왔던 그가 그런 말을 할 권리는 그 어디에도 없다. 한나로서 노래 부르고 싶고 사랑 받고 싶지만, 제니라는 탈을 뒤집어 쓴 것보다 더 악질적인 모순이다. 그가 제니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한나의 부재를 느끼고, 어렴풋이 자신이 한나를 사랑했다는 감상에 빠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나가 멋대로 전신 성형을 하고 자신을 속여왔던 것에 짐짓 화를 내지만, 한나를 사랑하면서도 제니에게만큼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던 것은 역시 외모 때문이었을 테니까. 이렇듯 프로듀서의 이중적인 플레이는 기분 나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를 초조하게 만들던 모든 잘못을 그에게 덮어 씌울 속셈은 없다. 문제는 『미녀는 괴로워』에 나오는 모두에게 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 영화 전반을 감싸고 있는 시스템 자체에 있다. 시스템은 절대 착하고 노래 잘 하는 한나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예쁘고 날씬해져서 비로소 완벽한 슈퍼 우먼 제니로 거듭났을 때, 제대로 무대 위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쥐어 준다. 나는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는 데도 무리하게 그것을 요구하는 시스템과 그 시스템에 아무런 의식 없이 조력하는 사람들이 못마땅하다. 한나는 분명 그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줄곧 노력해 왔을 테지만, 전신 성형은 그간의 노력과는 다르다. 인위적이어서가 아니다. 이제까지의 노력이 자기 자신을 이룩하기 위한 것이라면, 전신 성형은 지금까지의 '한나다움'을 잃기 위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전신 성형 후, 그녀의 모습은 자신을 좀더 제대로 아껴주려고 하지 않으면서, 착하고 아름다운 여자로 남들에게 사랑 받으려고 애쓰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누구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수술해 주세요."라고 말하던 한나의 눈빛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이름과 가족, 친구, 애완견을 되찾았지만 그는 반드시 중요한 뭔가를 잃었다. watch out 2 -미녀는 괴로워- 좀더 뚜렷하게 외칠 수 있다. "『미녀는 괴로워』는 위험해!"하고. 왜냐하면 여성의 적을 여성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질투심과 열등감에 눈이 멀어, 예쁘고 날씬해진 한나이자 제니라는 존재를 외롭게 하고 위협하는 것은 곁에 있던 정민과 아미라는 여성이었다. ![]() 정민은 한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엉덩이에 같은 문신을 아로 새길 정도로, 쿵짝이 맞고 마음이 통하는 친구. 아무리 지나가는 사람이 못생기고 뚱뚱하다고 쳐다 봐도 둘이라면 혼자 있을 때 절대 못했을 "뭘 꼬라봐?"하는, 격한 소리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나가 성형 사실을 알리려고 했을 때, "남자한테 여자는 딱 세 종류야. 예쁜 여자? 명품! 평범한 여자? 진품! 너 같은 여자? 바로 반품이야!"라고 상처주면서까지 뜯어 말린 이유는 무엇인가. 과연 그것이 정녕 상처 입을 한나를 걱정해서인지, 의심스럽다. 정말 친구를 위해서라면, 굳이 그런 식으로 충격주지 않아도 우회적으로 설득할 수 있었을 텐데……. "수영장에서 본 남자, 그 남자가 너 좋아서 그러는 줄 알아? 만만해서 그러는 거야. 너, 절대 물건은 사지 마라." 뒤따르는 한나의 퉁명스러운 대꾸가 정민이 예뻐진 친구를 한껏 비꼬았던 이유를 말해준다. 바로 질투와 열등감 때문이었다는 것을. 과거에 한나가 좋아하는 선배에게서 약을 샀듯이, 여전히 그대로인 정민은 좋아한다며 접근하는 남자에게 속아 한증막을 들여 놓는다. 정민의 마음 속에서 자신과 친구의 격차는 이미 이만큼이나 멀어진 것이다. 과거와 현재로. 그리고 한편으로는 제니처럼 완벽해지고 싶다는 욕망을 벗어 던질 수 없다. 그래서 끝에 가서는 그 역시 전신 성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무대 위에서 제목소리를 잃고 입술을 달싹였던 가수 아미는 좀더 앙칼진 시기심을 드러낸다. 게다가 전신 성형이라는 한나의 최대 비밀과 아버지를 걸고 넘어진다. 하지만 아미야 말로 『미녀는 괴로워』에서 가장 괴로운 인물이다. 그는 무대 위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춤을 추고 노래해 왔지만, 실은 자신과 같은 옷을 입히며 비웃고 깔보았던, 무대 뒤의 한나와 다를 바 없는 반쪽 짜리였다. 그러면서도 그간의 노력과 열정, 전신 성형을 발판으로 무대 위의 꿈을 이룬 한나와는 달리, 어리석기까지하다. 음치이니까, 노래 하고 싶다면 더없이 노력해야 할 텐데 남이 망하기만을 바라다니 한심하다. "watch out!" 조심해야 한다. 모든 것이 갖춰진 슈퍼 우먼을 종용한 것은 시스템이었지 않나. 그런 시스템을 여성들의 질투심과 열등감으로 가리우고, 마치 여성이 욕심이 과해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양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따져 봐야 한다. 한나가 단순히 가수로서 성공하고 남자에게 사랑 받기 위해서,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깍는 아픔을 독하게 견뎌 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시스템 탓으로 돌리고 한나를 비롯, 이들의 행동을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받아 들여서도 안 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부하 직원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미란다를 앤디가 책망할 때, 미란다는 "너도 그랬었잖아."라고 말했다. 상관의 명령 때문이었다고, 그건 내 탓이 아니라고 자기 자신을 옹호하고 미란다를 더욱 악독한 여자로 몰고갔던 앤디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시스템에서 과감히 탈피해 본래의 삶의 방식을 되찾았지 않았나. 묻고 싶다. 콘서트장에서 "괜찮아"를 외쳤던 사람들에게 대체 무엇이 괜찮다는 것인지. 전신 성형을 통해, 뚱녀 한나가 두루두루 착한 제니로 변한 것이 괜찮다는 것인가. 두루두루 착한 줄 알았던 제니가 거짓말을 하고 잠시나마 시청자들을 우롱한 것이 괜찮다는 것인가. 제니의 미모에 반해 그를 따라 다녔던 어느 자장면 배달부로부터 시작된, 괜찮다는 말은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럽다. 그것은 해피엔딩을 위한 부적절한 장치이거나, 기존 시스템을 받아 들이겠다는 신호인 것 같았다. 차라리 괜찮다는 말보다 지지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을 것이다. 한나에서 제니로 변신한 모습은 괜찮을 수 있지만, 만약 요술을 부려 제니에서 한나로 변한다면 그때도 변함없이 괜찮다고 외칠 수 있을까.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
카테고리
최근 등록된 덧글
hudson straight leg j..
by hudson straight leg at 01/24 퍼가겠습니다! by 감사해요 at 01/04 참, 메리 크리스 마스.. by NB세상 at 12/25 greenmovie// 옆에 있.. by 지혜 at 01/12 오랫만의 글이로군요.. .. by Mizar at 11/10 매일 학교에 가고, 매일.. by greenmovie at 11/09 비공개// 체력이 워낙 약.. by 지혜 at 11/09 NB세상 // ^^ 재밌으.. by 지혜 at 11/09 어리광 이야기 너무 재.. by NB세상 at 10/27 캐모마일// ^^ 아침에.. by 지혜 at 09/29 subject
1. 착한 여자라는 꼬리표를 떼자! (mbc 드라마 『착한 여자, 나쁜 여자』를 중심으로) 2. Q&A (연습하자) 3. '다름'을 인정하는 언어 생활을 하자 4. 요즘 내가 좋아하는 것들 -다니엘 헤니의 밥솥 선전, 미용실에서의 지압 등 5. 싫어하는 음식(트랙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