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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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지나치게 신경 쓰고, 노상 욕을 먹지는 않을까 낑낑대다 보니, 노이로제에 걸린 것만 같다.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에도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눈에 날을 세우며 어떡해 그럴 수 있냐고 홀로 열변을 토하고, 그러다 또 지친 표정을 짓곤 입을 닫아 버리는 것이다.

난 어느새 꿈을 잃고만 것 같다. 쉽게 흔들리는 내 모습에 그저 실망스럽고, 벗어날 수 없는 걸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내 모습이 그저 안쓰럽다. 남들이 갖다 대 주는 현실에 만족할 뿐,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간절한 무엇을 찾아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내 속에 살아 있을 잠재적인 열정과 능력을 묻어둔다. 누군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게 묻는다 해도 지금의 난 우물쭈물하며 늘 기대해 왔듯이 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스스럼 없이 말해 주겠지……. 솔직히 말해, 내가 하고 싶었던 그 모든 것들이 내겐 벅찬 것이었다. 난 어떤 꿈을 위해서든 미친듯이 타오를 수 없었다. 예전에 경인방송(i TV)에서 B-boy에 관한 프로그램을 봤을 때, 그분들은 연습실에 거울이 사우나실처럼 이끼가 가득 낄 때까지 춤을 췄노라고 말했었다. 그래, 뭔가를 이루고 싶다면, 그러려고 한다면 그 정도의 의지와 열정이 있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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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임시저장을 해 놓았는지 모르겠다. 또 저렇게 약한 소리를 해댔을 땐 분명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 즈음이 아니었을까. 새벽이 되면 지나치게 예민해져서 큰일이다. 눈을 뜨자마자 가슴 속에서 움트는 희망의 열기가 차갑게 식어버리니까. 그렇지만 지금 시간도 시간인지라 우울한 기운이 몽롱하게 온몸을 감싸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얼마 전에는 타로카드를 보았다. 처음에는 친구의 말에 따라 재미로 본 것인데 보고 나서는 또 심각해져 버렸다. 물론 카드를 봐준 사람이 갑자기 말을 바꿨다, 성의가 없었다 하면서 믿지 말자고 다짐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특히 교사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실망이 컸던 것이 두 분 다 다른 것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고작 그런 말 때문에 흔들릴 수 있는 사안도 아니고 약해져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에는 과속 방지턱을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자동차의 차체처럼 괜히 마음이 삐걱거리면서 눈물이 나왔다. 특히 처음 봐준 분의 단호한 눈빛과 말투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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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언제까지고 번데기로 굳어 있지는 않을 테다. 눈부신 날개를 펼치고 꽃내음 가득한 행복의 숲을 날아다닐 그날을 위해 더이상 웅크리지 말자.

by 지혜 | 2007/11/09 23:48 | 매일의 미풍 | 트랙백 | 덧글(5)
발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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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민망한 일들이 좀 있었다. 바보짓을 많이 해온 지라 그런 것들을 쉽게 잊어 왔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 가끔 길 한복판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거나 한숨을 쉬는 일이 늘어갔다. 원해서 남들의 비웃음을 살 짓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 역시 본의 아니게 남들의 웃음거리가 된 것이니,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며 잊어야 하겠지만 문득 꿈틀거리는 그 놈의 기억은 나의 뒷덜미를 모지게 잡고 흔든다. 그냥 남들이야 내가 아무리 심각하고 진지하게 얘기해도, "왜 그랬어?"라는 성의 없는 말만 하면 그만이겠지만 말이다. '누군 그러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아?'라고 버럭 호통하긴 했지만, 맘 속으론 마구 '유유'하고 있었다. 그러게, 왜 선생님들 앞에서 입을 벌리고 잤느냐, 왜 게임을 하면서 실례를 했느냐고 아무리 날 닥달해도 마음만 아플 뿐이다. 배드민턴 칠 때 수없이 헛손질한 것도, 4발 달린 오토바이를 타다가 넘어진 것도, 카드 게임하면서 내내 벌칙쟁이였던 것도, "그냥 생긴 대로 정말 부실하구나." 하고 생각하고 넘길 일이지만, 차 안에서 '방울방울'뀌고 입 벌리고 잔 건 수습할 길이 없다. 냄새가 참 거시기 했기로서니, "누가 뀌었어?"하고 얼른 피신하는 얄궂은 놈 때문에 얼마나 민망하던지……. "살다 보면 뀔 수도 있지. 뭘 그러냐."하고 말해준 어느 분 덕분에 무사히 발각되지 않고 넘어갔지만, 암묵적으론 다 나인줄 알고 있을 텐데. 아찔하다. 다른 건 별다르게 나쁜 게 없었는데, 그것 때문에 수련회만 생각하면 부끄러워진다. 그후로 그놈만 마주치면 울컥 치미는 뭔가가 생겼다.

날 창피하게 해서 이런 말 하는 게 아니라, -물론 그런 것도 없진 않지, 나쁜 놈.- 나는 그놈이 몹시 마음에 안든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넉살 좋고 허풍 떨고 잘난척 하는 재수 없는 쪽으로만 삼다를 고루 갖추고 있는 녀석이다. 툭 하면 "나, 완이야."라고 하면서 거드름이나 피우고 나이 많은 여 선생님들께 '누나, 누나'하면서 지나치리만큼 아부를 떨어댄다. 머리 위에 딸랑이를 달고 있는 것 같이. 분명 그런 것들이 눈에 거슬리는 것은 내가 그런 것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난 아직 눈치도 없고 어리버리한데, 3살 차이 나는 사람이 이미 자기 혼자 사회 물을 다 퍼마신 듯 살살 어른들의 비위를 맞추는 모습이 눈꼴시려서일 테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신기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부럽지는 않다. 아무리 아부는 진심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사람을 기분 좋게 해 준다지만, 어느 정도는 진실성이 묻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윗사람에게 아양 떠는 것도 그렇지만, 나이 적은 나같은 사람의 흠을 꼬집어 대는 태도가 너무나도 노골적이다. 아이들을 위해 공연을 준비하다가, 물을 좀 안 떠왔기로서니, 물을 권했을 때 "난 얼음물 마실 거야."라며 무안 주고 말끝마다 비아냥 거리고……. 하긴 내가 좀 개념이 없었다. 결국 치사하게 넷상에서나 그놈을 씹고 있는 것은 눈치도 없고 빠릿빠릿하지 못한 나의 부끄러움을 감추고 싶은 좁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그놈은 공적인 자리가 아니라 사사로운 자리에서 곧잘 존댓말에 반말을 섞어 쓴다. 상당히 무례하게 보이던데, 정작 어르신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다. 진짜 상관없다고 느끼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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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수업이 끝나고 교탁 근처에서 여학생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옆반 남학생이 들어온 적이 있었다. "저 왔어요."하길래 쳐다보고 몇 마디 주고 받고 있는데, 뒤에서 딴 녀석이 밀어서 교탁이 밀렸다. 그 사이에 내 오른쪽 엄지 발가락이 교탁 밑에 깔려서 얼른 발을 빼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엄지 발가락이 피로 물들었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인데, 그 다음날 일이 좀 우습다. 워낙에 어릴 때부터 애교 부리는 게 거의 생활이다시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중1(14세) 제자들에게까지 애교(?)를 떨다니 이건 이미 병인가 하노라. 그러니까 이튿날 내 엄지 발가락에 교탁의 무게를 실어 주었던 학생이 내게 다시 "저 또 왔어요."했을 때 주위 남학생 두 명에게 "얘 때문에 나 다쳤어. 때려줘."라고 말해 버렸다. 그때는 무심결에 튀어나온 말이었고, 입으로 음향효과 넣어주면서 때리는 척 하는 녀석들이 귀엽기도 하고 은근 흐뭇하기도 해서 몰랐지만, 지금에야 생각해 보니 그게 웬말인가 싶다. 9시쯤 산책을 하면서 언니에게 말하니, 다짜고짜 "그러지마. 귄위 없어."하며 안타까운 시선을 고이 접어 날리신다. 이 죽일 놈의 어리광이여, 나 그대에게 명하노니 내 몸에서 이제 그만 나가다오. 그나마 종욱이랑 승현이가 어이없어 하진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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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9/21)은 말 못하게 피곤했다. 수업 준비도 제대로 못하고 들어간 수업에서 실수를 줄줄이 하고 말았다. 1교시에 맞춘 답을 틀렸다고 했다가 책을 보고 나서야 급 맞았다고 칭찬했고, 2교시에는 제대로 웃겼다. 문법 수업 중에 쓸데없이 바꾼 예문 때문에 '선생님'과 '선생'의 차이점을 설명해야 했는데, '님'을 얘기하면서 [니미]라고 말하니 벌써 시끌시끌해졌다.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게 '[니미]가 존대말을 나타내 주죠.'라고 말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조' 밑에 '니은(ㄴ)' 대신 '시옷(ㅅ)'을 적고 말았다. 머릿속으로 계속 '대' 밑에 '시옷(ㅅ)'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던 터라, 그런 실수를 한 것이다. 뜻하지 않게 '[니미] 좃'이 되어 버렸다. 순간 완전 웃음의 도가니 탕에 빠져 교실은 술렁거렸고, 나의 정신머리는 더욱 더 아득해져만 갔다. 수업을 대체 어떻게 마쳤는지 모르겠다. 아, 이제 날 그렇게 부르지는 않겠지……. '그래도 큰 웃음을 줬잖아.'하고 위안을 해봐도 절로 한숨이 나오는 걸 막을 수는 없다. 집단 최면이라도 걸고 싶다. 그런 일은 없었다고.
by 지혜 | 2007/09/24 02:31 | 매일의 미풍 | 트랙백 | 덧글(10)
죽지 않아, 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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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좋지 않은 버릇이 생겼다. 초조하거나 생각에 잠길 때 아랫입술 안쪽을 잘근잘근 씹는 것이다. 씹다 보면 며칠 이내로 헐어서 아픈데도 상처가 아물고 나면 다시 씹고 만다. 개학하고서 얼마 동안 좀처럼 좋아지지 않는 수업 분위기 때문에 우울했고, 마음을 다잡고 활기차게 수업하기로 마음 먹은 뒤에는 눈치병이 도져서 괜히 주위 선생님들의 눈치를 보고 앉아 있다. 내가 딱히 눈치를 슬금슬금 봐야 할 정도로 주위 선생님들한테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안절부절 못하는 건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부담임을 맡고 있는 반에서 담임 선생님에 대한 험담을 조금 듣고, 바로 앞자리인 그 선생님께 왜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일까. 왜 아이들은 자신들의 부적절한 말과 행동 때문에 화를 내신 선생님을 그저 삐졌다고만 생각하는 것이며, 그걸 굳이 나한테 밀하는 건지 알 수 없다. 내게도 분명 선생님을 욕하는 것으로 괜스레 내 자신을 합리화하려던 어리석은 시절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선생님에게 그 선생님의 험담을 늘어놓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만큼 편한 선생님이 없었기도 했지만……. "차별해요.", "지나치게 때려요."라는 식의 조금은 받아줄 수 있는 류의 칭얼거림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언짢아 하는 짜증 섞인 투정이라 참기 힘들다. 그런 식의 말은 주위 사람들까지도 기분 나쁘게 만드는데, "왜 좋으시잖니."하면서 웃어주는 걸로 좋게 좋게 넘어가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마음이 안 좋아 돌아오는 길에 버스에 앉아 또 입술을 깨문다. 다음에는 단호히 그런 얘기는 하지 말라고 말하리라,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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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구름이 잔뜩 끼고 비가 와서 그런지, 땅바닥에 쉴새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기분이 쉴새없이 내려갔다. 아주머니가 다른 생각을 하고 계신지 자리에 앉자마자 내게 "동부시장 지났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아직 안 지났다고 대답하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가 두 정거장 남았을 땐데, 한 정거장 지나고 나서 다시 물으셨을 때 그렇다고 답해 버렸다. 서둘러 내리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잘못 알려 드렸다는 생각을 못했고, 내리셔서 어리둥절해 하시는 모습을 보고서야 실수를 알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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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을 임시저정해둔 채 한참이 지났다. 요즘 나는 위태롭다. 뭔가가 꿈틀거리며 잔뜩 뭉쳐 있다. 조금만 잘못 다뤄도 금방 터질 기세다. 아무도 받아주지 않을 땡깡을 부린다. 거의 매일을 짜증스러운 얼굴로 수업을 듣는 녀석과 다를 바가 없다.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이해하지 못하면서 내가 다를 바가 없다. 잠이 부족해서일까. 체력이 모자라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금씩 무너져 가는 것일까. 요즘 마음을 짓누르는 압력이 '쉭쉭' 소리를 내며 내 마음을 끓이면 김을 내뿜으면서 추리소설을 사는 것으로 식히곤 했는데, 잘 읽지를 못하니까 그나마도 먹히지 않는다. 나보다 힘들게 일하면서도 취미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난 학교를 나설 때 즈음이면 거의 풀어져 버린다. 전철에선 일주일에 이삼일은 틀림없이 헤드뱅잉을 하고, 겨우 가방을 안고 내려 힘없이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러니 별 일 아닌데도 과민반응을 보이고, 언짢은 기분으로 수업을 마치는 날이 늘어가는 것이겠지……. 그래, 아무래도 지금의 나는 두 주먹을 힘껏 쥐고 외쳐야 한다. "키 작은 꼬마 아이, 지혜. 죽지 않아, 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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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웃긴 일이 있었다. 빵을 사먹어야 겠다고 생각하면서 육교를 건너 빵집을 향해 기분 좋게 걸어 가고 있는데, 빨간 뿔테의 여학생이 말을 걸었다. "혹시 몇 살이세요?" 허참, 도대체 나이는 왜 묻는지 의아했지만, "스무 살은 넘었는데요."하고 답해 주었다. 그냥 니가 알아서 뭐하게, 하는 식으로 째려 보고 대답하지 말 걸. 맹랑한 그 여학생이 나에게 나이를 물은 것은 담배를 대신 사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근처에 있는 여중일텐데, 그 녀석도 기가 찼을 것이다. 하필 조심스레 말을 건 만만해 보이는 성인이 근처 중학교 교사라니……. 얼핏 그 여학생의 손에 들려 있던 돈을 보아하니, 팔천 원 상당이었다. 그 정도의 액수로 요즘은 몇 갑 정도 살 수 있지, 아주 잠깐 그것이 궁금해졌다. 담배를 피지 않으니, 그리고 남자친구도 담배를 피지 않으니, 담뱃값에는 관심이 없다. 네 갑 정도는 살 수 있나. 아무튼 그 여학생이 있다 온 자리에는 체크 무늬 교복과 회색 교복이 섞여 있었다. 보아하니 회색 바지 차림의 짧은 커트머리가 빨간 뿔테 안경에게 시킨 것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그런데도 빨간 뿔테 안경을 쓴 여학생에게 알아서 포기하라는 말만 해주고 돌아섰다. 그런 일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여학생이 다니고 있는 학교에 연락을 해줘야 하는건가. 그건 지나친 감이 있었고, 내가 나설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실은 모르겠다는 건 무책임한 변명에 지나지 않고, 그저 신경쓰기 싫어서일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난 그 여학생의 뽀얀 얼굴을 떠올리며 슬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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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수련회를 떠난다. 부디 즐겁기를…….
실은 수련회에 별로 가고 싶지가 않다. 대신에 <즐거운 인생>을 개봉일인 내일 보고 싶다. 이상하게도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는 영화는 그 자체만으로 매력적이라 너무 보고 싶다. 굳이 개봉일에 보지 않아도 되련만. 예고편을 보았을 때, 가사 중에 '끝까지 노래할 거야.'라는 부분이 있었다. 본래 가네시로 가츠키의 어느 소설 중에, -아마 <레볼루션 넘버 3>였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춤추는 거야.'라는 말에 감격을 받은 지라 더더욱 보고 싶어진다. 노을이 지는 선분홍색을 띤 하늘 아래, 병원 옥상 위에서 좀비스의 일원 중에 하나는 자신이 들은 말을 전했다. '앞으로 너에게 힘든 일이 생기겠지. 그렇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춤추는 거야.'
우스갯 소리 중에 '포기라는 말은 김치를 담글 때나 쓰는 말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도 상당히 좋아한다. 물론 <슬램덩크>에서 정대만이 중학 결승전에서 몇 초를 남기고 주저 앉았을 때, 안 선생님이 한 '포기하면 그걸로 끝이다'라는 말도. 내 꿈이, 내 기대가 뭉개지더라도 예전에 생명을 가볍게 여겼던 정전시대처럼 쉽게 그만두고 싶지 않다. 그런 뜻에서 요즘 아이들을 보고 한숨 짓는 나는 너무나 쉽게, 또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에겐 의지가 없다고 단정 짓고 긍정적인 기대를 하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할게. 나는 너희들의 손을 놓지 않을게.
by 지혜 | 2007/09/11 23:12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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